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리하르트 바그너 (문단 편집) === 자녀와 후손들 === 리하르트 바그너는 두번 결혼했다. 첫번째 부인은 배우인 민나 플라너(Minna Planer: 1809-1866)였다. 무려 30년 가까이 부부로서 지냈지만 슬하에는 자녀가 없다. 두번째 부인은 지휘자 [[한스 폰 뷜로]]의 부인이었던 코지마 리스트(Cosima Liszt: 1837-1930)였다. 코지마는 바그너보다 무려 24년 연하였다. 코지마 리스트는 유명한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인 [[프란츠 리스트]]의 딸이다. 딸이긴 딸이지만 프란츠 리스트와 마리 다구 백작부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였다. 코지마는 전남편인 한스 폰 뷜로브와의 사이에 두 딸을 두었고 바그너와 결혼하고서는 딸 둘과 아들 하나를 두었다. 코지마와 한스 폰 뷜로브의 사이에서 태어난 두 딸의 이름은 블란디나와 다니엘라이다. 코지마와 바그너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들의 이름은 이졸데와 에바이다. 이졸데는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이졸데이며 에바는 '뉘른베르크의 명가수'의 에바이다. 그리고 유일한 아들인 지그프리트(Siegfried Wagner: 1869-1930)는 '링 사이클'에 나오는 지그프리트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다. 지그프리트 바그너는 아버지 리하르트 바그너의 뒤를 이어 작곡가가 되었다. 처음에는 음악가가 되기 싫어서 건축공학가가 되려고 했었다. 지그프리트 바그너는 1930년 8월, 어머니 코지마가 세상을 떠난지 몇 달 후에 세상을 떠났다. 1930년에는 바그너와 코지마의 첫 딸인 이졸데의 남편, 즉 바그너와 코지마의 큰 사위인 프란츠 바이들러도 세상을 떠났다. 리하르트 바그너의 유일한 아들인 지그프리트 바그너는 40이 되도록 결혼을 하지 않아서 어머니인 코지마의 속을 썩혔지만 46세에 돌연[* 지그프리트는 [[양성애자]]였다. 그것도 모르고 어머니인 코지마는 지그프리트에게 결혼해서 바그너 가문의 상속자를 만들어야 낸다고 독촉했다. 그럴 때마다 지그프리트는 핑계를 대며 결혼을 미루었다. 그러다가 결국은 코지마도 아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1913년쯤 해서 지그프리트는 이른바 [[하르덴-오일렌부르크 스캔들]](Harden-Eulenburg Affair: 1907-1909)으로 덩달아서 입장이 난처하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독일에서 동성애는 사회적으로 커다란 지탄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만일 지그프리트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확인된다면 바그너 가문에 큰 망신을 주는 것이 아닐 수 없었다. 지그프리트는 자기도 이성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했다.] 영국 출신의 17세 빈프레트 마조리 윌리엄스(Winfred Marjorie Williams: 1897-1980)와 결혼하였고 네 자녀를 두었다. 지그프리트 바그너의 큰 아들은 빌란트 바그너(Wieland Wagner: 1917-1966)이며 둘째는 딸 프리델린트 바그너(Friedelind Wagner: 1918-1991)이고 셋째는 아들 볼프강 바그너(Wolfgang Wagner: 1919-2010)이며 마지막이 딸 베레나 바그너(Verena Wagner: 1920-)이다. 셋째 아들인 볼프강은 두번 결혼했는데 첫번째 결혼에서 태어난 두 딸 중 큰 딸인 에바(Eva)와 두번째 결혼에서 태어난 딸 카타리나(Katharina)가 현재 공동으로 바이로이트 페스티발의 감독을 맡고 있다. 그러므로 리하르트 바그너에 의하여 발족한 바이로이트 페스티발은 그가 세상을 떠난 후 미망인인 코지마가 상당기간 운영의 책임을 맡았다가 아들 지그프리트에게 일임하였으며 지그프리트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큰 아들인 빌란트가 책임을 맡았고 1966년에 빌란트가 세상을 떠나자 빌란트의 동생인 볼프강이 맡았다가 이어 볼프강의 두 딸들이 공동으로 맡고 있는 것이다. 리하르트 바그너의 아들, 손자-손녀, 증손자-증손녀 중에는 예술계로 진출한 사람들이 많다. 오페라 성악가들도 있고 무대 감독, 극작가, 작곡가, 무용가 겸 안무가, 음악학자, 출판가, 심지어는 재즈 싱어까지 있다. * 리하르트 바그너 (1813-1883). * 1836년 결혼 민나 플래너(1809-1866) 배우. 리하르트 바그너보다 4세 연상 * 1870년 결혼 코지마 리스트(1837-1930) 리하르트 바그너보다 24세 연하. 프란츠 리스트와 마리 다구(Marie d'Agout) 백작부인 사이에서 태어남. 1870년에 첫번째 남편인 지휘자 한스 폰 뷜로브와 이혼. 폰 뷜로브와의 사이에서 두 딸을 두었으며 리하르트 바그너와의 사이에서는 1남 2녀를 두었다. 리하르트 바그너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첫째 딸 이졸데는 코지마가 폰 뷜로브와 이혼하기 전에 태어났기 때문에 이름을 이졸데 루도비츠 폰 뷜로브라고 붙였다. 둘째 딸인 에바도 리하르트 바그너와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기 전에 태어났으므로 어쩔수 없이 에바 폰 뷜로브라는 이름으로 출생신고되었다. 아들 지그프리트만이 결혼 후에 태어났기 때문에 지그프리트 바그너가 되었다. * 딸 이졸데 뷜로브 (1865-1919) * 1900년 결혼 프란츠 뷜러(1872-1930). 음악감독 * 손자 프란츠 빌헬름 베이들러(1901-1981) * 딸 에바 본 뷜로브 (1867-1942) * 1908년 결혼 휴스턴 체임벌린(1855-1980). 작가(유명한 반유태주의자) * 아들 지그프리트 바그너 (1869-1930). 작곡가, 지휘자, 무대감독. 바이로이트 페스티발 운영[* 지그프리트라는 이름은 '링 사이클'에 등장하는 지그프리트의 이름을 가져온 것이다.][* 지그프리트 바그너는 기록상으로 18편의 오페라를 작곡했다. 뿐만 아니라 오케스트라 작품들과 성악작품(주로 가곡)들도 남겼다. ] * 1915년 결혼 비니프레트 마조리 윌리엄스 (1897-1980). 피아니스트 칼 클린드보르트(Karl Klindworth)의 양녀. 히틀러와 친분이 두터웠음. 지그프리트 바그너와의 사이에 네 자녀를 두었다. * 손자 빌란트 바그너(1917-1966). 무대감독. 바이로이트 페스티발 운영[*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 작품들을 새로운 현대 스타일의 무대로 연출하는 이른바 레기테아터(Regietheater)의 주창자이다. 레기테아터는 간단히 말해서 드라마의 심리학적인 면에 초점을 두며 상징적인 자연주의 무대를 설정하는 것을 말한다. 설명을 하자면 오페라를 공연함에 있어서 감독이나 제작자에게 재량권을 주어 작곡자의 오리지널 의도와 무대 연출의 내용이 변경될수도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주로 2차 대전 이후에 이러한 경향이 시도되었다. 그래서 장소가 변경된다든지 또는 상황이나 스토리, 그리고 출연진 까지도 변경될수 있다. 스토리는 정치사회적인 변화에 부응하기 위해 변경될수도 있고 지나치게 전통적이어서 현대인으로서 이해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변경하는 경우도 있다. 레기테아터에서는 장소가 오리지널로부터 현대적으로 변경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인종차별, 남녀차별, 계급에 의한 억압 등 현실적인 문제들은 강조된다. 무대장치는 현대적으로 추상적이며 단순화 된다. 섹스에 대한 사항을 강조하는 경향이 많다. 의상은 시대나 지역을 혼합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2010년 생루이오페라극장에서 '피가로의 결혼'을, 2011년 '돈 조반니'를 공연 할 때에 어떤 출연자는 18세기의 의상을 입었으나 어떤 출연자는 20세기 중반의 의상을 입도록 했다.][* 빌란트 바그너는 바이로이트에서 그의 할아버지인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를 연출한 사람으로 기억되지만 그는 독일의 다른 도시, 또는 유럽의 여러 도시에서도 오페라 연출을 했다. 예를 들면 그는 '탄호이저'와 '방랑하는 네덜란드인'을 코펜하겐에서 '링 사이클'을 나폴리, 슈투트가르트, 쾰른에서, 베토벤의 '휘델리오'를 슈투트가르트, 런던, 파리, 브뤼셀에서 연출하여 대단한 관심을 끌었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을 했지만 빌란트가 진정으로 사랑했던 여인은 독일의 소프라노인 안야 실랴였다. 안야 실랴는 불과 20세의 젊은 나이에 바이로이트에서 '방랑하는 네덜란드인'의 젠타를 맡았었다. 당시에 젠타를 맡았던 레오니 리자네크가 사정이 생겨서 출연을 취소했기 때문에 대타로서 나가게 되었던 것이다. 안야 실랴의 젠타는 그야말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안야 실랴는 강력하고 화려하며 젊고 빛나는 음성을 마음껏 들려주었다. 게다가 연기력이 뛰어났다. 안야 실랴는 빌란트가 이상으로 생각하던 여인이었다. 안야 실랴는 빌란트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바이로이트에서 엘자(로엔그린), 엘리자베트와 비너스(탄호이저), 에바(뉘른베르크의 명가수)를 맡아했다. 안야 실랴는 빌란트와 실과 바늘의 관계가 되어 바이로이트 이외에서도 함께 했다. 이졸데, 브륀힐데,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엘렉트라와 살로메, 알반 베르크의 룰루와 보체크의 마리를 맡아했다. 안야 실랴는 심지어 빌란트가 제작한 베르디의 오텔로에서 데스데모나를 맡기도 했다. 빌란트가 연출을 맡고 안야 실랴가 주인공으로 출연한 바그너 오페라로서 비디오로 나온 것으로는 1967년 '트리스탄과 이졸데'와 '발퀴레'가 있다. 오사카 국제 페스티발에서 바이로이트 페스티발과 관련하여 공연한 실황이다. 이밖에 슈투트가르트 슈타츠오퍼에서 1968년에 공연한 베르크의 '룰루'도 있다.][* 빌란트의 바그너 오페라 제작에 참여했던 정상급 성악가들은 다음과 같다. 한스 호터, 조지 런던,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 에버하르트 배흐터, 토마스 스튜워트, 테오 아담, 요제프 그란이들, 제롬 하인스, 볼프강 빈트가쎈, 라몬 비나이, 제스 토마스, 욘 비커스, 마르타 뫼들, 아스트리드 바르나이, 레진 크레스팽, 리타 고르, 레오니 리자네크, 비르기트 닐슨, 장 마데이라, 그레이스 호프만, 프란츠 크라스, 빅토리아 데 로스 앙헬레스, 그레이스 범브리, 크리스타 루드비히, 마르티 탈벨라, 카를로스 알렉산더, 이사벨 슈트라우스, 제임스 킹, 클로드 히터, 티초 팔리(Ticho Parly), 귀네스 존스, 프릿츠 분덜리히 등이다. 빌란트는 위대한 배우를 원했지만 그러면서도 자기의 계획을 성실하게 따라줄 성악가를 원했다. 지휘자로서 빌란트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은 [[한스 크나퍼츠부슈]], 클레멘스 크라우스, 앙드레 클러이튼스, [[피에르 불레즈]],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에리히 라인스도르프]], 하인츠 티트옌, 로린 마젤, 볼프강 자발리슈, [[칼 뵘]], 브루노 마데르나, 토마스 스키퍼스 등이었다.] * 1941년 결혼 거트루드 라이싱거 (1916-1998). 댄서 겸 안무가 * 증손녀 이리스 바그너(1942-) * 증손자 울프 지그프리트 바그너(1943-) * 증손녀 나이키 바그너(1945-) 극작가, 출판가 * 증손녀 다프네 바그너(1946-) 배우 * 배우자 우도 프락쉬(1934-2001) 기업가(루코나 사건에서 살인혐의), 이혼 * 배우자 틸만 스팽글러(1947-) 작가 겸 출판가 * 손녀 프리덜린드 뱌그너(1918-1991) * 손자 울프강 바그너(1919-2010) 무대감독 * 배우자 1943년 결혼 엘렌 드렉셀(1919-2002) 1976년에 이혼 * 증손녀 에바 와그너 파스퀴에(1945-) 극장지배인. 바이로이트 페스티발 공동감독 * 배우자 이브 파스퀴에 * 현손자 안토인 바그너(1982-) * 증손자 고트프리드 바그너(1947-) 음악학자 * 배우자 베아트릭스, 이혼 * 배우자 테레시나 로제티 * 현손자 에우제니오 바그너 * 배우자 1976년 결혼 구드른 바그너 (1944-2007) * 현손녀 카타리나 바그너(1978-) 무대감독. 바이로이트 페스티발 공동감독 * 손녀 베레나 바그너(1920-) * 배우자 1943년 결혼 보도 라페렌츠(1897-1974) 나치당 간부 겸 SS 지휘관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